얼마 전 모 회원분께서 "사진사의 슬럼프"에 대한 질문을 쓰셨는데,
오늘 좀 시간이 남아서 제가 겪었던 슬럼프를 적어 볼까 합니다.
물론 아직도 슬럼프이긴 합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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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막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 했을때
첫번째 슬럼프가 왔습니다.
'사진학 개론'수업시간 이었습니다.
교수님이 어떤 주제를 던져주면, 학생들은 찍어 와야 하는 것이었죠.
첫번째가 "게슈탈트 이론에 입각한 점, 선, 면의 촬영"이었습니다.
수업을 통해 이론이 뭔지는 어렴풋이 알겠는데,
일상의 풍경에서 점, 선, 면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과제 발표날이 되었고, 첫번째 충격이 왔습니다.
대부분이 미대생이었던 학생들에게 그 주제는 정말 쉬웠던 것이고,
공대생에, 미술이라고는 중학교때 연합고사 이후 공부하지 않았던 저는
완전 맛이 갔죠.
그 수업을 B+ 맞았는데, 어떻게 그 수업이 지나간지도 모르겠네요...ㅎㅎㅎ
두번째 슬럼프는 첫번째 사진동호회를 들어가서였습니다.
다들 "취미"라는 이름으로 모였다고 하여 그런가보다 했는데,
첫 출사 후 사이트에 올라 온 사진들을 보고 좌절했습니다.
도무지 똑같은 곳에서 찍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광경들이 펼쳐졌습니다.
당연히 저는 사진을 올리지 못했죠.
나중에 좀 친해지고 이야기해보니,
쇼핑몰 촬영경력 10년, 현직 디자인회사 대표, 전직 웨딩포토 실장, 사진학과 출신, 미대 출신...
이제껏 사진과는 전혀 관게없는 삶을 살았던 저에게 문화충격이었습니다.
세번째 슬럼프는 사진동호회를 활동하고 난후 1년쯤 되었을 때입니다.
저랑 비슷한 스펙의 회원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네임드가 되어버린 겁니다.
갑자기 기백만원대 카메라와 렌즈를 사지를 않나...
좋다는 포토샵 액션을 다 돌려서 사진을 꾸미질 않나...
전국을 돌아다니며, 모델촬영회를 쫒아 다니질 않나...
사진 실력은 그저 그래보이는데,
어느 순간 사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더군요.
지금은 그 분 사진 올라오는 걸 보면서 "애 쓴다"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있는 조건에서 죽어라 달려가고 있는데, 그 사람은 돈으로 바르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그 사람이 싫으면서 제 사진이 초라해지더군요.
네번째 슬럼프는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후반의 사진팀들로 인해 왔습니다.
특히 인물사진 하면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네임드 사진 팀 전성기때였죠.
힐링브러쉬, 그라포스, 루퍼스 등등...
그 시절 모델겸 사진사였던 알프스토끼님, SEM님 등...
그분들의 사진을 보면서 또다른 절망감이 들더군요.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저 사람들과 비슷한 결과물을 낼까...
정말 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외에, 오래된 모니터를 사용하므로써 겪었던 이상한 색감에 대한 이야기들,
"네 사진은 구리다."라고 했던 어떤 유명 블로거의 한 마디,
"네 사진은 2%가 부족하다."라고 했던 제 첫 사진 스승님의 이야기까지...
온갖 슬럼프가 올 말들은 다 듣고 살았습니다...ㅋㅋㅋ
참 재미있는 건 극복방법입니다.
소위 "고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현업에 종사하고 있거나,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그분들이 사진에 투자한 시간은 절대 극복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또 하나, 내가 찍고자 하는 주제를 정확히 정하지 못하면
평생 여러 장르에 끌려다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주제는 겨우 작년에 정해졌습니다...ㅎㅎㅎ
끝으로, 굉장히 우스운 상황에서 슬럼프가 깨지기도 합니다.
어느날 고등하교 동창녀석과 술을 들이붓고 있었는데,
그 녀석이 뜬금없이 "너 사진 잘찍더라."라고 한 겁니다.
그때 드는 생각은,
"높은데서 보면 내 실력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일반인이 봤을 때는 봐줄만하게 찍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더 술을 퍼마셨습니다...ㅋㅋㅋ
무슨 일이든 10년정도 하면 어느 정도 앞이 보인다고 하더군요.
물론 아직 저는 안개속에서 헤매고 있지만,
혹시 사진으로 인한 슬럼프에 빠지신 분들은 제가 겪은 일들을 보시면서
"사람은 다 똑같구나"하고 위안 받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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