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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풍남동 한옥마을 끝자락에, 아주 작은 전파사 '김일무선' 이 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전파사를 찾는다고, 그냥 편히 쉬셔도 될텐데...

굳이 칠순도 넘은 연세에 매일 전파사 문을 열고 뭔가를 고치고 계십니다...


누군가 버린 낡은 선풍기, 소리도 잘 나지 않는 라디오, 전축...


김일환 선생님의 정성스런 손길에 다시 생명을 얻은 아이들이

다시 누군가에게 무료로 나눠진다고 합니다...


40년전쯤...성함과도 비슷하고, 또 너무나 좋아하셨던 김일선수의 이름을 따서

'김일무선' 이 되었다는...


이 곳이 앞으로도 오래오래 문을 열고 사람들을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일무선 - 박성우 시


처음엔 통신기기를 취급하는 가게인 줄 알았다

페인트 글씨 흐릿하게 간판이 걸린 김일무선,

나중에야 동네전파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짐자전거가 받쳐지고

알루미늄섀시 미닫이문이 스륵 스르륵,

가게 앞 커다란 스피커에서는 라디오가 나왔다

여름 한낮 더위를 참다 참다

김일무선으로 중고 선풍기를 사러 갔다

한 평 남짓한 가게에 앉아

티브이를 수리하고 있던 늙은 주인은

틀어놓있던 선풍기, 코드를 뽑아 들더니

그것 외에는 다 팔려서 딴 건 없다고 했다

어쩌다 고개를 못 가눌 뿐

아직은 쓸만할 거라면서 한사코 내밀었다

어르신은 어떡할라구요 알아서 헐 팅게 가져가

회전을 누루면, 빠개져 금간 뒷목이

어느새 고개를 숙이고 돌아가는 선풍기

허나, 일단 이단 삼단 바람세기에 맞춰

철썩철썩 파도소리가 나오고

끼룩끼룩 갈매기 소리가 나왔다

트로트 메들리가 나오기도 하고

겨울바람 소리가 쌩쌩 나오기도 했다

머리맡에 라디오 켜듯 선풍기 틀고 엎드려

왜 하필 김일무선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을까

육칠십 년대에는 제법 근사하기도 했겠지?

어림짐작으로 주파수를 맞춰보면서 나는

서른다섯 내 나이 무렵의

김일씨에게 전파를 날려보았다

치익 치지직 치직 운이 좋게도 답신이 왔다

시를 쓰다가 그냥저냥 늙은 나는

서른다섯을 건너는 가전제품수리공 김일씨와

무선으로 교신을 나누며 찜통더위를 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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