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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6년째가 되는 내 조그만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 : NEX-7
글쓴이 : 하록선장 등록일 : 2017-11-25 01:58:59 조회수 : 3,826 추천수 : 14
곧 6년째가 되는 내 조그만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 : NEX-7








2017년 3월, 아마도 저는 그 달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2년 6개월동안 잘 살던 집에서 부당하게 쫒겨나기 직전,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우리각시와 작은 전시를 열었거든요.
원래 있던 짐들과 가구들을 다 빼고 벽에 그 흔적을 남겨놓았습니다.
옛 WG 멤버들 사진을 모아 소금에 묻었습니다.
중요했지만 이젠 더 이상 쓸모없게 된 서류들을 다 분쇄했습니다.


그렇게 정든 집을 떠나, 또 다른 소중한 집을 얻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그 때보다 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갑자기 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 문득 저의 오래된 카메라가 꼭 그 집을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라는 절대자는 출시 당시 최고의 미러리스였던 이 카메라를 초라하게 만들어놓고는, 제게 그를 떠날 것을 강요합니다.
2013년 초봄부터 이어진 우리의 인연을, 그 절대자가 끊어내려 합니다.


이제는 여기저기 번들거리고 뒤쪽 가죽도 다 떨어진 채 가끔 오작동을 내는 나의 낡은 카메라.
녀석은 여전히 2400만화소라는 꽤 괜찮은 스펙과 유려한 디자인을 갖고 있습니다만, 엄청나게 흔들리는 동영상 결과물 때문에 저는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5축손떨방에 디자인도 아름다운 pen-F, 혹은 20만원이면 구할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의 e-p5...
불행히도 저는 그저 돈없는 유학생일 뿐이라, 남들처럼 쉽게 기변할 처지는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지요.










가끔은 수동렌즈로, 또 가끔은 자동렌즈로. 저는 몽글몽글한 보케가 참 좋습니다.


그래서일까요... 2002년 이후로 지금까지 꽤 많은 수동렌즈들을 써봤습니다.
넥스-7 이 녀석에겐 타쿠마 50mm f1.4, 헬리오스 58mm f2.0, 코시논 50mm f1.8, 그리고 주피터-8 50mm f2.0를 물려봤네요.
지금 남아있는 건 주피터-8 뿐이지만요. 아무래도 미러리스의 경박단소의 미덕을 해치지 않는 유일한 m39 렌즈인 까닭이겠지요.


비록 최소초점거리가 무려 1미터나 될 뿐만 아니라 최대개방에서 엄청나게 소프트하지만, 쉽게 못버리겠더라구요.
예전에 장터에도 내놓아봤지만 아무도 둘러보지 않더군요.


지금은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공부하냐구요?
네, 전 독일에서 미대를 다니고 있습니다.


카셀, 아마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을 이 작은 도시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합니다. 벌써 내년이면 졸업이네요.
한국에선 조각을 전공하고 대학졸업 후엔 사진작가였던 제가, 여기서는 코스튬을 만들어 영상작업을 합니다.
재미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시고, 또 어떤 분들은 멋지다고 하십니다.


뭐, 저야 끌리는 대로 살 뿐입니다. 스스로도 제 삶이 그리 순탄해 보이진 않네요. ㅎㅎㅎ






















올해는 원없이 전시를 보며 돌아다녔습니다.
2017년엔 스위스 바젤아트페어, 독일 카셀도큐멘타, 독일 뮌스터조각프로젝트,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렸습니다.
사실 이렇게 겹치기도 쉽진 않지요. 베니스비엔날레는 2년에 한번, 카셀도큐멘타는 5년 에 한번,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무려10년에 한번 열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올 해 베니스에선 비엔날레 기간에 맞추어 데미안 허스트의 개인전도 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하지만 이 낡은 카메라는 개인작업이나 기타 전시를 기록하기 위해서만 사용되진 않습니다.
훨씬 더 많은 비율로 녀석의 센서에 맺히는 것은 주변 풍경, 그리고 사람들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 풍경보단 인물을 더 담아온 것 같습니다.
제 눈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눈빛이나 몸짓, 혹은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그 사람의 감정을 카메라에 오롯이 담아내는 순간이야말로,
그 어떤 대화만큼이나 진솔한 시간이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여행을 가서도 장대한 풍경을 광각으로 담는 것보다 그 곳의 사람들을 더 많이 찍어온 것 같습니다.
원래부터 풍경에 큰 관심이 없다보니 넓은 화각의 렌즈도 거의 산 적이 없었고, 그러다보니 이런 현상도 더 심해지는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요즘엔 동영상 촬영 때문에 16-50 번들렌즈가 땡기더군요.


만약 제가 이 렌즈를 산다면, 시그마 19mm f2.8 은 장터행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












































시간이 나면 가끔씩, 집에 있는 소중하거나 오래된 물건을 담습니다.
집 안 작은 불빛,
각시의 곰돌이 인형,
저의 낡은 노트북 X60,
며칠 전 데려온 작은 수채화고무나무,
친구들과 만들어먹은 스프링롤,


그리고 저의 아주아주 오래된 모자.


여기저기 뜯어지고 헤져서 손바느질로 꼬매기도 여러 번 했지만 아직 버릴 마음은 없습니다.


















오랜 고민 끝의 저의 결론입니다.


저는 낡은 친구 넥스 7을 버리는 대신에 싸구려 짐벌을 하나 구입했습니다.
여행가방이 더욱 무거워는 지겠지만, 아직도 팔팔한 녀석을 버리기엔 우리가 함께 한 시간과 고생의 순간들이 훨씬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더 시간이 흘러 녀석이 더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면, 그 때 내려놓아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 곧 6년째가 되는 내 조그만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 : NEX-7 ]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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